만든MANDEUN에서는 만드는 사람의 소식을 전해드리고 있어요. 새삼 만드는 일이란 참 다양합니다. 미술관에서 만나는 커다란 동상도 누군가 만든 물건이겠으나, 내가 공들여 쓴 일기장도 내가 만든 나만의 것이니까요. 만든에서는 전혀 다른 분야의 두 예술가를 만났습니다. 식물패턴제작소 바스큘럼과 작은 가게로서의 음악가 김목인은 자신만의 작업을 만들어 가는 창작자입니다. 그런 두 사람이 남매 사이라는 점은 괜스레 장난스런 질문을 던지고픈 주제이기도 했어요. 닮은 듯 다른, 두 명의 예술가에게 만드는 일의 의미를 물었습니다. 지금 무엇을 만들고 계신가요?
자연의 이야기를 담는 바스큘럼
작업 과정은 어떻게 이루어지나요?
평소에 식물 사진을 많이 찍어 두는 편이에요. 사진 찍을 때부터 그림으로 그릴 걸 염두에 두고 사진을 찍고요. 그림을 그릴 때는 식물과 사진을 함께 두고 그려요. 그림을 그린 다음에는 컴퓨터로 옮겨서 패턴 작업을 해요. 실크스크린으로 프린트하고 프린트된 원단으로 제품을 만들어요.
핸드 프린트를 하니까 프린팅이 잘 되는 원단으로 골라요. 되도록 합성섬유가 안 섞인 것을 사용하려고 하고, 최근에는 오가닉 원단 위주로 사용하려고 노력해요. 이러다 보니 쓸 수 있는 원단이 되게 다양하지는 않은 편이에요.
프린트 작업을 하는 테이블이 원단 5마가 나오는 크기라서요, 5마씩 잘라서 프린트를 해요. 패턴별로 리스트를 만들어서 작업하고 하루에 할 수 있는 양이 50마 정도 되는데, 이걸 하면 대략 5~6시간이 걸려요. 이정도 작업하면 체력 때문에라도 불가능해요. 핸드프린트는 2인 1조 혹은 3명이 있어야 해요. 프린트 하는 날을 정하면 그날은 작업실에 누가 오는 거나 전화를 받거나 그런 걸 최소화하고 집중해서 작업해요. 예전에는 일주일에 한 번 정도의 주기로 프린트를 했는데 요즘은 그렇게까지 자주 하지는 않아요.
실크스크린을 선택한 이유가 있어요?
식물 그림을 그려야겠다 이게 첫 번째 이유고요. 식물이 계절마다 다른 모습을 가지고 있고, 어디에서 자라는지에 따라서도 조금씩 다르고, 뿌리나 잎 하나의 그림으로는 표현이 아쉬운 식물도 있어서 이걸 한 프레임에 넣었더니 패턴이 되더라고요. 그래서 패턴을 하게 되었어요.
실크스크린 작업은 대학에서 한두 해 정도 경험한 적이 있어요. 제 성격 자체가 뭐 하나 하는 걸 크게 어렵지 않아 하는 편이에요. 실크스크린 작업에 대해서는 대학 때 배운 게 있으니까 직접 해보기로 했어요.
작업 과정 중에서 제일 좋아하는 공정(과정)과 제일 까다로운 공정은 어떤 거예요?
식물 찾아다니고 식물에 대해서 공부하는 과정이 제일 재미있어요. 그림으로 옮기는 것도 시간만 허락한다면 행복한 시간이고요. 그 뒤에 제품화하기 위한 수많은 과정과 제품을 판매하는 과정은 상대적으로 덜 재밌는, 해야 하니까 하는 부분도 있지만 성취감을 느낄 수 있는 과정이기도 해요. 사람들에게 전달되는 과정이니까 피드백으로 얻는 즐거움도 있고요.
직장인이다 생각하고 작업실로 출근해요. 보통 10시나 늦어도 11시까지 작업실에 오고 6시까지는 작업을 하든 안 하든 작업실에 있으려고 하고요. 예전에는 야간 작업도 했는데, 요즘은 잘 안 하고 주말에는 쉬어요. 아, 작업하기 싫은 날은 안 해요.(웃음)
직장생활 하는 분들은 워라밸이라는 말도 하고 일하지 않는 시간에 취미 생활을 하려고 하잖아요. 창작자는 직장인들이 취미 생활로 하는 걸 일로 하는 경우라서 앉아서 계속 작업을 하지는 않더라도 생각하고 느끼는 게 작업의 과정이어서 그 시간도 많이 쓰는 편이에요.
보통 패브릭 작업하는 분들이 패브릭으로 생활용품이나 소품을 만들어서 판매하는 분들이 많은데요, 바스큘럼은 원단 자체도 판매하는 게 특별한 부분이기도 해요.
원단은 다양한 용도로 활용할 수 있으니까, 식물 패턴을 사람들이 다양하게 활용했으면 하는 마음에 선택하게 되었어요. 그때는 섬유업계가 이렇게 큰 줄 모르고 뭣 모르고 선택한 것도 있는데요.(웃음)
제가 바느질하는 사람은 아니라서 제품을 만들기보다 “원단을 가지고 필요한 것을 직접 만들어서 사용하세요” 이런 맥락으로요. 원단을 판매할 때는 충분히 협의 과정을 거친 상태에서만 납품을 해요. 개인에게 도매로 판매하거나 위탁판매를 하지 않고, 원단은 바스큘럼 사이트에서 온라인으로만 판매해요.
사이트에 리뷰란이 없는데요. 같은 원단도 누군가는 얇다고 느끼고 누군가는 두껍게 느끼는 것처럼 개인차가 큰 편이라, 리뷰가 있으면 자칫 부정확한 정보가 전달될 수도 있겠다 싶더라고요. 원단을 주문해서 어떻게 사용하는지 궁금할 때도 있는데, 바스큘럼 원단을 구입하는 분들도 저와 성향이 비슷한 건지 인스타그램 태그 같은 것도 잘 안 하시더라고요.(웃음)
패턴으로 만든 첫 식물은 어떤 거였어요?
쌈 잎 패턴을 제일 처음 했어요. 쌈 잎 패턴은 바스큘럼의 1호 패턴이라 저희도 중요한 패턴으로 생각하고 있어요.
엄마가 여름이면 텃밭에서 키운 쌈 채소를 보내주셨는데요, 그게 모양도 다 다르고 맛도 다르고, 어떨 땐 택배 박스에 달팽이가 따라올 때도 있었어요. 자세히 보니까 모양이 참 예쁘더라고요. 시각 예술을 하는 사람이니까 조형적인 부분을 찬찬히 보게 되는데 쌈 잎을 보면서 사람이 만든 디자인 형태보다 자연이 만든 게 위대하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런 생각에 드로잉을 했고요.
한창 북유럽 디자인 열풍일 때가 있었는데요. 해외 작가들 스토리를 보니까 그 사람이 생활한 환경, 그런 자연에서 사니까 그런 디자인을 하는 거다 싶더라고요. 한국에서도 식물을 이용한 디자인을 하면 굳이 동양화 같은 게 아니어도 자연스럽게 한국적인 색깔이 나오겠다 싶었어요. 한국의 자연, 한국의 환경을 담은 디자인을 만들고 싶었달까요.
식물 하면 보통 효능과 분포지역 중심으로 이야기를 하고, 친환경으로만 여겨서 좀 무겁게 받아들여지는 부분도 있는 것 같아요. 저는 조금 더 편하고 재밌게 식물을 생활안에서 느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이런 식물을 보면 패턴으로 만들고 싶어요?
특이하거나 예쁘게 생겨서 패턴으로 만들고 싶은 경우보다, 식물을 알게 된 계기가 특별할 경우 패턴으로 만들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요. 그래야 식물을 소개할 때 진짜 이야기를 할 수 있어서요. 특이하고 예쁘기만 하면 사실 할 얘기가 별로 없거든요. 경험을 통해서 만나고 자세히 들여다보면 할 이야기가 생기는 것 같아요. 밀의 경우에도 밀 재배하는 분의 밀밭을 보면서 작업을 하게 된 경우예요. 밀 패턴을 통해서 빵 만드는 사람의 이야기를 같이 들려줄 수 있고, 우리밀 농가의 이야기도 할 수 있고, 이렇게 제가 경험하고 그래서 할 이야기가 많은 식물을 선택해요.
지금까지 바스큘럼은 몇 개의 식물을 소개했어요?
바스큘럼 원단으로 나온 것만 30종류 정도 되고요, 그 외에 외부 작업 통해서 만든 건 100개~200개 정도 되어요. 바스큘럼 패턴의 경우 다양한 그림과 이야기가 있는데, 외부 의뢰를 통해 만든 건 한 가지만 있는 거라 수량이 더 많은 편이에요. 외부 작업을 할 때는 빠른 시간안에 식물을 파악하고 공부한 다음에 디자인 작업에 들어가요. 바스큘럼 제품만으로는 브랜드를 유지하는 것이 쉽지 않아요. 제품을 대량생산 하려고 시작한 것도 아니고 환경 측면에서도 그렇고 제품은 최소한만 생산하려고 해요. 제품 생산과 이미지를 활용하는 걸 5:5 정도로 작업해요.
2023년 바스큘럼의 계획이 있다면?
바스큘럼이 벌써 올해 10년 차예요. 그래서 앞으로 10년을 어떻게 보낼지에 대해서 고민하고 그걸 위한 준비를 이제 시작해야 하지 않을까 라는 생각을 해요. 사업화하느냐 꾸준히 개인 작업으로 가지고 가느냐, 서울에서 계속 있을지 지방으로 갈지 이런 고민도 하고요. 바스큘럼이 회사가 아니고 제 개인의 삶과 연결이 많이 되어있다 보니까 잘 고민하고 정리해야겠다 싶어요. 한 번 일을 벌리면 2, 3년은 그 일을 집중해서 해야 하니까 저도 좀 신중하게 절제하면서 방향을 만들어 가려고요.
about 바스큘럼.
바스큘럼은 과거에 식물학자들이 식물연구를 위해 들고 다녔던 식물채집상자의 이름입니다.
식물패턴제작소 ‘바스큘럼’은 식물의 뿌리부터 씨앗까지 전체를 소중히 담아와 연구하고 기록하듯, 식물 본래의 모습을 다시 한 번 관찰하고 그림으로 옮겨와 자연과 사람의 이야기를 담은 식물패턴을 제작합니다.
‘식물을 모티브로 작업하면 삶이 식물로 가득해지지 않을까’란 상상으로 만들어진 바스큘럼의 식물패턴은 핸드프린트 텍스타일과 다양한 매체와의 작업을 통해 계절마다 다른 패턴과 컬러로 담은 자연의 이야기를 전하고 있습니다.
이야기로 빚어내는 선율, 싱어송라이터 김목인
요즘은 어떤 작업 하면서 보내세요?
싱어송라이터 이랑과 함께 가을즈음 낼 곡을 준비 중이에요. 듀엣 공연도 계획하고 있고요.
최근에는 낙원상가의 기억을 담은 책을 쓰고 있어요. 그리고 아낌없이 주는 나무를 썼던 쉘 실버스타인이라는 작가의 다른 책을 번역하고도 있어요.
김목인 님은 가사의 매력이 돋보이는 음악을 하신다고 생각해요. 특히 3집 <콜라보 씨의 일일>은 가사의 스토리텔링이 도드라졌던 것 같아요. 어디서부터 픽션이고 어디까지 자기 이야기일까 궁금하더라고요.
특정한 경험담은 아니에요. 제가 체험하고 느낀 것을 표현하는 중에 픽션이 가미되는 것 같아요. 어느 하루의 경험을 딱 담기보다는 여러 경험을 포개거나 상상을 덧대어 보며 한 곡을 구성하기도 하고요.
이야기가 너무 강하면 공연할 때 설명해야 돼요. 관객분들은 이게 어느 맥락에서 쓰인 이야기인지 모르잖아요. 다만 3집 때는 제 음악을 자세히 들어주는 분들이 생기다 보니 저도 한 발짝 나아간 작업을 해본 것 같아요. 마치 3인칭 주인공이 있는 것처럼 가사를 쓴 거죠.
콜라보 씨의 일일은 누군가의 하루를 따라가는 구성이죠. 혹시 작업 초기부터 시놉시스가 잡혀 있었나요?
아니요. 계속 곡을 쓰면서 구성을 찾아 나갔어요. 이게 가장 시간이 오래 걸리는 작업이죠. 소설이라면 긴 호흡 안에서 구성을 만들 수 있지만 앨범은 10곡 내외에서 구성감을 느끼게 해야 하는 작업이다 보니 생각보다 시간이 짧을 때가 있어요. 노래 한 곡을 쓸 때도 이게 곡과 곡을 연결하는 곡인지 아니면 시작곡인지, 이런 고민들을 하죠.
김목인 님 음악을 듣다 보면 저는 꼭 가사가 어느 도시인의 일상을 표현한 시 같기도 하더라고요. 이건 작법에 관한 질문일 텐데요. 가사를 쓸 때는 어느 시점에서 끝맺는 걸까 궁금해요.
사실 그게 어려운 점이죠. 왜냐하면 노래라는 게 논설문처럼 너무 결론이 나는 것도 재미가 없거든요.
다만 글쎄요. 많은 분이 가사랑 시를 비교하는데 저는 두 개가 많이 다르다고 생각해요. 리듬이나 길이 면에서 비슷하긴 하지만 마치 희곡처럼 연극이 없으면 애매한 장르라고 할까요. 가사는 노래를 염두하고 쓰는 거잖아요. 그래서 사실은 제약이 많은 거죠.
어디서 멈출 것인지. 이건 작품의 여운이나 매력을 만드는 요소에요. 그런데 생각해 보면 노래는 1, 2절과 같은 형식이 있다 보니 생각보다 너무 길게 쓸 수도 없어요. 때로는 애매한 길이로 썼다가 한 절을 더 돌아야 되는 경우가 생겨서 일부러 더 길게 써야 되기도 하고요. 이럴 때는 원래 생각하지 않던 내용을 채워야 하니 어렵죠. 장르적인 특징인 것 같아요.
한편 ‘이야기’에 집중했던 3집에서의 화두가 4집 <저장된 풍경>에 이르러 ‘풍경’으로 넘어가는 과정이 흥미로워요.
1, 2집까지는 사람들한테 하고 싶은 이야기가 많았고 어떻게 하면 재밌게, 재치 있게 전달할까 고민했던 것 같아요. 그런데 지난 몇 년 동안은 그게 어렵더라고요. 코로나 기간 전에는 짓궂은 농담도 주고 받았지만 세상에 안 좋은 일들이 자꾸 벌어지다 보니까 농담을 할 분위기가 아니게 된 셈이죠.
저는 노래에 이야기를 담아서 공연하는 가수이다 보니 더 많이 생각해요. 내가 발표하고 끝이면 모르지만, 한 2, 3년 동안 이 곡을 부르며 다니잖아요. 내가 정말 부르고 싶은 게 아니면 노래를 쓸 때 스스로 검열하더라고요. 그래서 자연스럽게 어떤 의견을 전달하는 노래보다 장면과 풍경을 보여주는 방식으로 옮겨왔던 것 같아요.
코로나19로 인한 재난 상황에서의 분위기를 말해주신 것 같아요. 그런데 또 음악의 질감이라고 해야 될까요? 4집에서 느껴지는 감수성이 마냥 우울하지는 않아요.
아무래도 가족들이 모두 병원에 입원한다거나 하는 극단적 상황이 계속 벌어지는 건 아니잖아요. 코로나19가 유행할 때 저는 동네에서 제한된 생활을 하며 보냈던 것 같은데요. 그래서 오히려 고민이라면, 그런 대단히 평범한 일상도 노래로 만들었을 때 들을 만하게 만드는 것이 고민이었던 것 같아요. 제가 느끼기에 아무리 가치가 있더라도 듣는 분들 또한 뭔가 발견할 수 있을 정도의 깊이가 있어야 하니까요.
김목인 님의 작업을 보며 발견했던 공통점이 있어요. 작업마다 양가적인 측면이 도드라진다고 할까요. 음악의 질감과 대비되는 가사 속 냉소적인 조크라거나. 혹은 4집의 주요 화두였던, 추억과 트라우마가 공존하는 풍경의 양면성처럼요.
잘 봐주신 것 같아요.(웃음) 어쩌면 그냥 취향인 것 같아요. 어떤 소재로 작품을 만들까 고민할 때 단순한 걸 좋아하는 분도 있지만 저는 입체적인 것에 관심이 가거든요.
대부분의 사람들은 모순된 행동을 하잖아요. 그런 면모를 재밌게 보는 사람이 있고, 안 좋게 보는 사람이 있는데 저는 그걸 재밌게 보는 사람이었던 거죠. 소재를 선택할 때면 해석의 여지가 많은 것을 다루게 되는 것 같아요.
4집을 발매하고 진행한 책방 투어에도 관심이 갔어요. 어떤 계기로 시작한 공연인가요?
앨범이 나오면 보통 콘서트를 하는데 책방 투어를 해보면 어떠냐는 제안을 받았어요. 작가로서 북토크를 하는 일은 간간히 있었죠. 마침 저는 제 책이 있으니까 꼭 저를 뮤지션으로 정하지 않더라도 책방을 돌아보면 좋을 것 같았어요. 책방에서도 많이 좋아하셨고요. 그때가 코로나 때문에 책방들이 한창 행사를 열지 못하던 때여서요. 저도 오랜만에 뵙는 책방들은 되게 반가웠죠.
아마 책방 투어는 제가 그런 자리를 만들었다기보다는 애초에 책방이라는 공간이 그 곳에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던 것 같아요. 예전에 비해서 대형 서점이 많이 없어졌고 큰 공연장도 침체되는 경우가 많잖아요. 그러다 보니까 작은 책방들이 새로운 문화 공간으로서 역할을 하는 것 같아요. 그 덕에 저도 책방에서 공연할 수 있었던 것 같고요. 동네에서 책방이 이런 역할을 하고 있구나 많이 느끼는 계기였어요.
만든에서는 작은 예술이라는 이름으로 우리 주변의 창작자를 소개하고 있어요. 다만 작은 예술이라는 말이 조금 모호하기도 하죠. 그때 김목인 님이 쓰신 문장이 힌트가 됐어요. ‘김목인’이라는 이름으로 차린 작은 가게로서의 음악가. 이 말에 대해 좀 더 들어보고 싶었어요.
새로운 이야기가 아닐 수도 있는데요. 음악을 하면서 느끼는 것 중의 하나는 대중에게 음악가에 대한 환상이 많다는 점이에요. 많은 분들이 뮤지션은 영혼이 되게 자유로운 사람일 거라고 생각하시죠. 음악은 당연히 돈을 못 버는 일이라고 생각하는 분들도 계시고요.
그런데 막상 제가 씬 안에서 보면 음악가는 예술가 중에서도 가장 자신을 예술가라고 생각하지 않는 분들인 것 같아요. 특히 페이에 대한 얘기를 하는 것에 거리낌이 없죠. 오늘 공연을 했으니 얼마를 주세요, 라고 말하는 게 되게 익숙한 문화거든요.
‘직업으로서의 음악가’라는 책을 쓸 때는 음악가가 직업이 되면 하루 일상이 어떤지를 보여주고 싶었던 것 같아요. 사실 저는 어떤 일이든지 가볍게 하거나 깊이 있게 하거나의 차이만 있지 싶어요. 직업에 따라서 차이가 있는 게 아니라요. 우리가 글을 쓸 때도 가볍게 쓸 때와 진지하게 쓰는 건 천지 차이잖아요. 음악도 그 정도의 일이기 때문에 음악가에 대한 어떤 스테레오 타입을 깨주고 싶은 마음이었던 것 같아요.
어쩌면 작은 예술이라는 게 사실 크고 작음에 관한 말은 아니라는 생각이 드네요. 그보다는 창작 활동이 삶의 지평에 연결되어 있느냐가 더 중요한 관점인 것 같아요.
작은 예술이라고 하니까 떠오르는 게 있어요. 번역하며 알게 된 건데 영미권에서는 같은 단어를 대문자로도 쓸 수 있고 소문자로도 쓸 수 있잖아요. 그래서 큰 예술이라 할 때는 대문자를 앞에 쓰고 작은 예술은 일부러 소문자로 쓰는 거죠. 예를 들면 우리가 매일 만드는 일상적인 예술은 소문자로, 내가 나중에 위대한 예술을 남기고 싶다고 하면 대문자로요. 사실은 같은 단어지만 대소문자가 바뀌면 튀어 보이고 한 번 더 생각하게 되는 거예요.
그런 것처럼 작은 예술이란 것도 사실 따로 있는 게 아니잖아요. 대신 예술의 어느 측면을 한 번 더 돌아보게 되는 거죠.
about 김목인.
작곡가, 싱어송라이터. 밴드 [캐비넷 싱얼롱즈]의 멤버로 음악을 시작해 현재는 자신의 이름으로, 또 [집시앤피쉬 오케스트라]의 멤버로도 활동하고 있다. 「리틀 팡파레」(캐비넷 싱얼롱즈), 「음악가 자신의 노래」, 「한 다발의 시선」, 「콜라보 씨의 일일」, 「저장된 풍경」 등의 앨범을 발표했다.
2015년 잭 케루악의 『다르마 행려』를 옮기며 번역과 집필을 겸해오고 있다. 번역서로는 『Howl : 울부짖음과 다른 시들』 『리얼리티 샌드위치』 『한결같이 흘러가는 시간』 『고양이 책』 『강아지 책』 『지상에서 우리는 잠시 매혹적이다』, 저서로는 『직업으로서의 음악가』 『음악가 김목인의 걸어 다니는 수첩』 등이 있다.
두 분은 꾸준히 무언가 만들게 되는 동력과 힘이나 어디서 온다고 느끼세요?
바스큘럼
저는 재밌는 거나 호기심이 생기면 만들어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요. 그런 생각을 오히려 좀 자제하는 편이랄까요. 특이한 식물을 보거나 관심 가는 게 생기면 그걸 그려야겠다는 생각이 제일 먼저 들어요.
김목인
저는 어릴 때부터 손으로 만드는 걸 좋아하는 편이었어요. 라디오 고치고 과학상자 같은 거 만들고 이런 거. 물론 싱어송라이터로 활동하면서 제 생각을 음악으로 표현하는 건 되게 새로운 경험이고 배우는 게 많았지만 애초에 만드는 일이 재미없었으면 음악을 안 했을 수도 있겠다 싶을 때가 있어요. 지금도 스트레스받을 때면 옛날에 컴퓨터로 뚝딱이면서 음악 만들 때, 그때 참 재밌었다고 생각해요. 그 시절엔 그냥 만드는 일에 관심이 있어서 했던 거였으니까.
목인 씨의 앨범 커버 디자인을 유인 씨(바스큘럼)가 계속 맡아 해주셨다고 들었어요. 주로 어떤 과정으로 작업하셨나요?
바스큘럼
처음에 앨범 콘셉트가 나오잖아요. 그 분위기를 고려하면서 사진이 쓰일지 그림이 쓰일지 정해진 것 같아요. 앨범은 대부분 오빠가 일상에서 쓴 이야기가 담긴 거여서 앨범과 잘 어울리는 이미지가 이미 모아져 있는 경우들도 있고요. 사진을 새로 찍을 때도 있고요. 제 역할은 오빠가 녹음하는 동안 앨범 디자인으로 스트레스를 받지 않도록 제 몫을 서둘러 잘 끝내는 거죠.
김목인
아무래도 저는 디자인적으로 어느 정도 선에서 끝내면 되는지 모르잖아요. 유인이는 디자이너이니까 이게 됐다, 안 됐다를 결정하죠. 저한테 그림을 더 그리라고 한다거나.(웃음)
아까 유인 씨랑 얘기할 때 목인 씨 공연하는 것 보면 어떠냐고 물어봤었거든요. 그랬더니 웃기다고.(웃음) 그 의미가 웃기다 라는 게 아니라 공연이 재밌다는 뜻이었어요. 목인 씨는 바스큘럼 작업 보셨을 때 어떠세요?
김목인
실은 제 동생이지만 사실 모르는 것도 많다고 생각해요. 전체적으로 어떤 세계를 가지고 작업을 이어가는지, 어떤 의도와 비전이 있는지 제가 다 아는 게 아니니까요. 저도 바스큘럼 소비자들하고 비슷해요. 신기한 건 되게 신기하고. 어떻게 보면 가족이라서 안 물어보는 것도 있어요. 제가 오빠라고 와서 너 이거 더 만들어 이런 얘기 하면 안 되잖아요.(웃음)
그래서 일부러 한발 물러서서 보게 돼요. 방해될까 봐.
바스큘럼
창작자 이긴 하지만 각자 분야가 달라서 작업 이야기를 자세히 나누는 편은 아니에요. 오히려 작업자의 그 마음을 아니까 오히려 자세히 안 물어보는 것도 있어요.
약속한 시간을 넘기며 긴 대화를 마치니 오후가 한참 지나있더라고요. 햇살이 살랑이는 창가에서 나눈 수다는 간만에 여유로웠어요. 서로 다른 관점과 취향을 가진 우리지만 또 한 편으로는 서로에게 동질감을 느꼈다고 할까요. 아마 우리가 모두 만드는 일에 관한 애정을 가지고 있기 때문일 거예요. 두 예술가를 향한 여전한 기대와 응원을 갖고서 만든의 에디터들은 바스큘럼의 작업실을 나섰어요. 그리고 한 번 더 생각했습니다. 만든에서는 만드는 사람의 이야기를 소개합니다. 언제든 한낮의 정원과 느긋한 피크닉처럼. 여러분께 작고 소중한 수다를 전해드릴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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